2016.05.31 17:50

[蒼霞哀歌] 영주 소수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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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蒼霞哀歌] 영주 소수서원

종 목 : 사적 제55호
명 칭 : 영주 소수서원 (榮州 紹修書院)
분 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서원
수량/면적 : 18,657㎡
지정(등록)일 : 1963.01.21
소 재 지 :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1번지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 소수서원
관리자(관리단체) : 영주시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임금이 이름을 지어 내린 사액서원이자 사학(私學)기관이다.

조선 중종 37년(1542)에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안향(安珦)을 제사하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가, 중종 38년(1543)에 유생들을 교육하면서 백운동서원이라 하였다. 명종 5년(1550)에는 풍기군수 이황의 요청에 의해 ‘소수서원’이라 사액을 받고 나라의 공인과 지원을 받게 되었다. 중종 39년(1544)에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제사지냈고, 인조 11년(1633)에는 주세붕을 더하여 제사지냈다.

서원의 건물은 비교적 자유롭게 배치되었는데 일반적인 서원의 배치가 완성되기 이전인 초기의 서원이기 때문인 듯하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학생들이 머물며 공부하는 일신재와 직방재가 연속으로 있다. 서원의 일반 배치가 강당 좌우에 대칭으로 동·서재를 두는 것인데 비해, 소수서원은 현판의 이름으로서 구분하였다.

사당은 명륜당의 서북쪽에 따로 쌓은 담장 안에 있다. 서원이 있던 자리에는 원래 통일신라시대의 절인 숙수사가 있었는데, 그 유적으로 당간지주와 초석 등이 남아있다.

소수서원은 조선시대 후기에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며, 지금도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소수서원 → 영주 소수서원)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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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역에 내려서 인삼은 구경만하고, 27번을 타고 소수서원에 내렸다. 부석사까지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서 무리하지 않고, 포기했다. 다음은 환승을 고려해 보아야겠다. 돌아올 때는 풍기역 지나 영주역에서 기차를 탔다. 추가로 다음에는 영주역에서 디젤기관차에서 전기기관차로 변경하는 것을 꼭 지켜보아야겠다. 인산도 먹어보고...

이제 나도 이력이 좀 있나보다. 소수서원에는 문루가 없고, 동/서재도 아니고 사당과 강당이 전후가 아니고 동서로 배치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최초의 서원이었기 때문에 서원 건축 양식이 완성되기 전이었기 때문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한국식 서원배치 운운하는 설명을 보고는 영 잘못왔다 싶었다.

다시 돌아나와서 당간지주를 바라보았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불교에서 유교로 귀족에서 사대부로의 그 "힘의 이동" 권력의 이동의 웅변을 들어보고 싶었다. 사원 여기저기 석조물 흔적들이 콘트라베이스처럼 낮게 외치고 있었다.

다른 서원들은 언덕이나 경사지에 지어진 것에 비하여 숙수사를 밀어내고-역사적인 사실은 아님 - 지어진 서원이어서 평지에 있어서 입체적인 면이 좀 부족해 보였다.

성생단에 돌이 사용되지 않은 것은 여러가지 상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성하지 않았다고 해도 후대에 도입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서원 건물 배치가 중구난방이어서 3번을 돌아보았다. 단청도 여러가지가 사용된 것 같아서 혼란스러웠다. 개인적으로 인두로 지진 단청(ㅋ)이 제일 좋았다. 개인적으로 사당은 몰라도 강학당에 단청은 짚신에 분칠한 것 같은 느낌이다. 물이 있어서 좋았고, 나무가 많아서 좋았다. 수돗물 약수(ㅋ)도 좋았다.


전체사진(33매)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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