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5 18:41

[蒼霞哀歌] 구미 금오서원과 도리사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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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蒼霞哀歌] 구미 금오서원과 도리사 기행


종 목 : 경상북도  기념물 제60호
명 칭 : 금오서원 (金烏書院)
분 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서원
수량/면적 : 5,577㎡
지정(등록)일 : 1985.10.15
소 재 지 : 경북 구미시 선산읍 원리 276번지
시 대 :
소유자(소유단체) :
관리자(관리단체) : 금오서원
상 세 문 의 : 경상북도 구미시 문화공보담당관실 054-450-6063
야은 길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길재(1353∼1419)는  정몽주·이색과 함께 고려 후기에 절의를 지킨 ‘고려삼은(三隱)’으로 불리는 학자이다. 그는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는 것을 알고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하였다. 조선이 건국되고 세자 이방원(태종)이  관직에 임명하였으나 거절하고 학문과 후학양성에만 전념했다.

금오서원은 선조 3년(1570)에 금오산 자락에 세웠으며  선조 8년(1575)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35년(1602)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다시 지었고, 광해군 1년(1609)에 다시 사액되었다. 이 때 점필재 김종직·신당 정붕·송당 박영·여헌 장현광을  추가로 모셨다.

서원 경내에는 위패를 모시고 있는 상현묘를 비롯하여 정학당, 동재와 서재, 읍청루 등이 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철거되지 않은 서원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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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출발하여 금오서원을 찾았다. 제일 아쉬웠던 것은 해설사가 상주하지 않는 서원이라 여러가지 궁금증을 풀수 없었다.

제일  궁금했던 것은 마을이 아주 평범한 아니 평범 이하의 마를이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우 서원이 있는 마을은 상당한 부촌의 면모를  보인다는 점이었다. 사당 문의 기화에 새겨진 명문으로 보아서 최근에 수리된 적이 있다는 점에서 관리가 부실하거나 방치가 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재는 공사 중이다.

그냥 귀가를 하려고 했으나 페친의 급벙 요청으로 점심을 먹고  신라 최초의 절이라는 도리사를 갈 수 있었다. 도리사도 금오서원처럼 약각은 이상한 점이 보였다. 예상보다 규모가 좀 작다는  느낌었지만, 석조물들은 거대하고, 수준이 있어 보였다.

하마비는 많이 보앗지만 하차비는 처음 보았다. 과거 고관대작들이 마차나 가마를 이용하여 방문하였을 것이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었다.

선입감으로 구미가 아마 시카고같이 산업 도시적이고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적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강화가 되고 말았다. 현재는 그렇다고 해도 과거에서도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이유를 해소하고 싶었으나 풀 수 없었다.

SNS의 분위기와 달리 잠깐 접한 구미는 독재의 초록색을 벗고 싶은 것 같지 않았고, 친일파 척결보다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새마을기가 흩날리는 한 문화의 불모지로 남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차량으로 동행해 주시고, 밥까지 사 주신 연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참고로 부산 별로인 곳입니다. 그리고, 회 비싸기만하고 위험하기도 합니다. 일본산도 많고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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