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1 10:56

[蒼霞哀歌] 외면받은 만고의 충신 박제상 - 효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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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蒼霞哀歌] 외면받은 만고의 충신 박제상 - 효충사

박제상은 눌지왕 시절 425년 고구려와 왜에 볼모로  보내져 있던 임금의 동생 둘을 돌아오게 하고 자기는 목숨을 잃은  만고충신(세종대왕)이다. 고구려에서 복호(卜好)를 데려오고,  왜로 들어가  미사흔(味斯欣)을 신라로 도망치게 하고 본인은 붙잡혀  화형을 당했다고 한다. 원래 구출작전을 받은 자들은  수주촌간(水酒村干) 벌보말(伐寶靺)과 일리촌간(一利村干) 구리내(仇里迺)와  이이촌간(利伊村干) 파로(波老)등이었는데 박제상에게  떠넘겨 버린다. 기록은 추천이라고 하는데 전혀 믿기지 않는다.

효충사가  있는 곳은 소토(효충)공단 가운데이다.  그래서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공단 직원들이 점심 후 산책하기 좋은 위치와 구성이었다.  1946년에 조성되고 70년에  복원되다보니 사진을 찍을만한 것도 별로 없지만 당연히 사당은 문이 잠겨 있었다. 그래서 생각이  많아졌다. 생가터에 지었졌다고  하지만 공의 아들인 백결선생의 방아타령 이야기로 짐작하기에 변변한 가옥이 있었을 것 같지도 않다.  고려시대에 충렬사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마저도 소실되었다고 한다.

눌지왕은 동생들이 돌아온 것은 기뻐하여 우식곡을 짓고  잔치를 벌이지만, 아내와  딸은 자결하여 치술령 망부석의 전설이 된다. 처를 위로하기 위한 사당이 지어지고, 현재 울산의  치산서원이 된다. 살아남은  둘째딸은 미사흔의 처가 되고, 백결도 공직 생활을 하지만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만고의  충신이라고 평가한  세종도 사액을 내린 기록은 없다. 어마어마한 유생들이 성지순례처럼 다녀가고 시를 남기지만 말 뿐이었던 같다.  오히려 망부석의  전설과 기복신앙이 연결되면서 박제상보다는 망부석이 더 유명한 것이 현실이다. 양산의 인물 첫줄이 박제상인데 울산에  빼앗길 것  같아서 충효공원을 재정비한 것 같다. 그런데 동상을 건립한 기금은 풍력발전기금이라고 한다. 효충사를 떠나오는데  가로등이  청사초롱을 디자인한 것이다.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졌다.

만고 필요없는 것이 충이 아니었던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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