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5 07:38

[蒼霞哀歌] 경주 북부문화권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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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蒼霞哀歌] 경주 북부문화권 기행

보물 제413호 독락당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제사를 받드는 옥산서원 뒤편에 있는 사랑채이다. 이언적(1491∼1553) 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에 거처한 유서 깊은 건물이라고 한다.

조선  중종 11년(1516)에 지은 이 건물은 낮은 기단 위에 세운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집을 향해 오른쪽 3칸은 넓은 마루인데 앞을 모두 터 놓았으며, 왼쪽 1칸만 칸을 막아  온돌방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원래는 맨 오른쪽 칸도 막아서 방으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어, 대청은 가운데 2칸뿐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기둥은 둥근기둥을 세우고 대청 천장은 뼈대가 모두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독락당 옆쪽 담장에는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달아 이 창을 통해서 앞 냇물을 바라보게 한 것은 아주 특별한 공간구성이라 할 수 있다. 독락당 뒤쪽의  시내에 있는 정자 또한 자연에 융합하려는 공간성을 드러내 준다고 하겠다.

사적 제154호 옥산서원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이언적의 학문은 퇴계 이황에게 이어져 영남학파 성리설의 선구가 되었다.

이곳은  선조 5년(1572)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처음 세웠고, 그 다음해에 임금에게 ‘옥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공부하는 장소인 구인당이 앞에 있고, 제사를 지내는 체인묘가 뒤에 위치한 전학후묘의 형식이다. 체인묘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하고 있는 맞배집이다. 안에는 이언적의 위패를 모셔 놓았다. 구인당은 앞면 5칸·옆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헌종 5년(1839)에 화재로 사라졌다가 다시 지어진 건물이다. 그 외에도 정문인 역락문, 2층 건물인 무변루,  학생들의 기숙사로 동재인 민구재, 서재인 암수재 등 여러 건물이 있다.

서원 동남쪽에 1972년 후손들이 세운  청분각이 있는데, 이언적의 『수필고본』(보물 제586호)과 김부식의 『삼국사기』완본 9권 등 많은 서적이 보관되어 있다.  옥산서원은 조선 후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제외된 47개의 서원 중 하나로, 선생의 저서와 역대 명인들의 글씨와 문집이 보존되어  있다.

국보 제40호 정혜사지13층석탑

경주 정혜사터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1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에서는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1층  탑몸돌이 거대한데 비해 2층부터는 몸돌과 지붕돌 모두가 급격히 작아져서 2층 이상은 마치 1층탑 위에 덧붙여진 머리장식처럼  보인다. 큰 규모로 만들어진 1층 몸돌은 네 모서리에 사각형의 돌기둥을 세웠으며, 그 안에 다시 보조기둥을 붙여 세워 문을 만들어  놓았다. 이렇듯 문을 마련해 놓은 것은 열린 공간을 추구하고자 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여진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조각이 아닌  별개의 다른 돌로 만들어 놓았고, 직선을 그리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 이르러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만이 남아있다.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즈음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탑은 13층이라는 보기 드문  층수에, 기단부 역시 일반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당시의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비교적 옛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1층을 크게 부각시킨 후 2층부터 급격히 줄여나간 양식으로 인해 탑 전체에 안정감이 느껴진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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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북부문화권은 일반적인 경주 문화와는 결을 달리한다. 경주 문화가 통일신라의 문명에 기반한다면 경주 북부문화권은 조선의 유교문화의  현실판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를 옮겨놓은 것 같은 양동마을과 국가공인 사원인 사액서원이면서 서원철폐령에서도 존치되었던  문원공 이언적의 옥산서원, 문충공 익재 이제현의 영당이었다가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복원된 안강 양월의 구강서원과 회재  이언적이 말년에 기거하던 생가의 사랑채이면서 회재의 세계관이 건축에 투영된 독락당 등이 중요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천연기념물 제115호 경주 독락당 조각자나무와 육통리의 천연기념물 제318호 경주 육통리 회화나무와 독락당 북쪽에 있는 국보 40호 정혜사지13층 석탑과  육통리의 흥덕왕릉도 중요한 유형문화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은  경주 북부문화권 기행이라고 하면 조금은 허세이다. 이번에 돌아다닌 곳을 일반인에게 알려진 순서대로 하면 옥산서원, 독락당,  정혜사지13층 석탑으로 문화재청 지정으로 평가로 정리해 보면 사적, 보물, 국보로 알려진 것과는 다른 역사적인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독락당의 『양반허세』및 중국 유학 또는 사신행을 자랑하던 명풍 쇼핑의 선구자였던 천연기념물  조각자나무가 첫 손가락이다. 요즘 한 창 피고 있는 양반 허세의 문화 상품 중의 하나가 능소화이기도 하다. 물론 회재가 약간 결이  다른 허세로 분류될 여지는 있지만 그렇다고 소위 말하는 실학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독락당에 보여지는 결로 그를 보헤미안이나  페미니스트로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행도 역시 중요도 순으로 정혜사지, 독락당, 옥산서원 순으로 진행했다. 혼자  다닐 때는 단체 관광에 대하여 약간의 환상이 있었지만 역시 개인적으는 혼자 다닌 것이 더 옳은 것 같았다. 일행이 한 분  뿐이었지만 내가 많이 특이하다는 것과 사람은 다르다라는 것을 실감했다. 단체 여행은 인솔보다는 따라다니는 것이 나에게는 더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날씨가 너무 더웠고, 일행이 있어서 사진은 거의 촬영하지 않았다. 나름 의미있는 여행이었다.  아울러 경주 북부문화권을 하루만에 둘러보는 여행도 한 번은 해보고 싶었다. 언급한곳은 모두 가 보았다. 개인적으로 출사를 가고  싶은 곳은 정혜사지의 별촬영과 흥덕왕릉의 안개와 노당리의 종덕재는 등이다. 종덕재는 그냥 안가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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